정 영 기

jung young gui

한 가지에 오래 머물고, 손을 들이고, 정성을 쌓아가는 일은 점차 낯선 일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빠르게 만들어지고 빠르게 사라지는 것들에 익숙해졌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던 일들마저 점차 즉각적인 방식으로 대체되는 시대를 살아간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영기의 작업은 그 흐름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작가는 실을 한 올 한 올 엮고, 쌓고, 이어간다. 하나의 화면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같은 행위가 수없이 반복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는 건너뛸 수 있는 단계도, 한 번에 완성되는 순간도 없다. 손이 움직인 만큼 실은 정직하게 놓여간다. 이렇게 작은 움직임이 계속해서 거듭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화면이 만들어진다.

실은 가늘고 유연하며, 쉽게 휘어지고 얽힌다. 정영기의 작업에서 이러한 실의 성질은 단순한 재료적 특성에 머물지 않는다. 한 올의 실 위에 또 다른 실을 더해가는 반복 속에서 작가는 하나의 대상에 깊이 몰입하고, 그 과정은 단순한 제작을 넘어 오래 집중하고 마음을 기울이는 행위가 된다.

그 정성의 시작에는 작가의 기억 속 아버지가 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아버지의 가마니 짜는 모습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작가 자신의 작업 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가 한 올 한 올 재료를 엮어 가마니를 만들었던 것처럼, 작가 역시 실을 엮으며 하나의 화면을 만들어간다.

서로 다른 시대와 목적을 가진 두 행위는 ‘반복해서 엮는다’는 몸의 움직임을 통해 연결된다. 아버지의 노동이 생을 이어가기 위한 일상의 반복이었다면, 그 기억은 이제 작가의 손을 거쳐 하나의 조형적 언어로 이어진다. 우리는 작품 앞에서 무언가를 손으로 만들어낸다는 행위가 지닌 감각과 그 수고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반복은 정영기의 작업에서 하나의 제작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실을 엮고 이어가는 행위는 선과 면을 만들고, 마침내 작가만의 회화적 언어로 전환된다. 완성된 화면 앞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하나의 작품이지만, 그 화면을 이루는 것은 수없이 반복된 손의 움직임이다. 정영기 작가의 작업은 이 반복적인 행위 자체를 하나의 회화적 언어로 이야기한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것, 수없이 손을 거쳐야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 안에는 효율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수고와 집중, 그리고 한 대상에 오래 마음을 기울이는 태도가 있다.

어쩌면 오래 마음을 들이는 일은, 여전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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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초상 Portraits of Being